좋아하는 마음으로 내 일을 빚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내 일을 빚다

취미로 즐기던 맥주 한 잔이 어느새 맥주 경험을 설계하는 독보적인 브랜드, '퍼멘티드 고스트'로 성장했습니다. IT 분야에서 사업 개발을 하던 김미연 님은 비어 소믈리에로서 새로운 길을 열며,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길로 만들어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당신을 위한 맥주 경험을 디자인하는 Fermented Ghost 비어 소믈리에 김미연입니다. 성수동의 테이스팅바에서 시작한 맥주의 매력을 일상 곳곳으로 확장하며, 맥주 한 잔이 전하는 다채로운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Scrap1: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듯, 맥주에도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퍼멘티드 고스트의 창업자이자, 맥주 경험 디자이너, 맥주 교육자, 그리고 비어 저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퍼멘티드 고스트(Fermented Ghost)는 맥주 경험을 큐레이션하고 디자인하는 플랫폼입니다. 성수동에 있는 오프라인 공간 '비어 테이스팅 바'를 중심으로 테이스팅 코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맥주를 큐레이션 하는 비어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WSET 맥주 국제 자격증 과정'이라는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보다 전문적이고 공인된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서 작년에 레벨 1과 레벨 2 과정을 정식으로 런칭했습니다. 이 외에도 심화 센서리 워크숍이나 치즈 등과의 푸드 페어링 교육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퍼멘티드 고스트라는 '브랜드'를 통해 외부의 다양한 영역에서 맥주 경험을 새롭게 제안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있어요. 셰프, F&B, 스포츠 브랜드 등과 협업하고, 브랜드 쇼케이스나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맥주의 다양한 매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퍼멘티드 고스트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신경 썼던 건 '의외성에서 오는 놀라움'이에요. 맥주는 대부분의 사람이 편하게 여기는 술이잖아요. "우리 맥주 한잔할까?"처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가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정작 맥주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게 맥주 맞아요?"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감각이 전환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저는 바로 그 반전의 순간을 만들고 싶었고, 퍼멘티드 고스트라는 이름도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이런 이유로 저희는 일반적인 메뉴판 대신, 오직 '테이스팅 코스'만을 운영합니다. 코스는 2~3개월 주기로 테마를 바꾸거나 필요에 따라 개별 맞춤형으로 구성되며, 스토리·상황·감정을 바탕으로 흐름을 설계합니다. 맥주를 '종류'가 아닌, 하나의 '경험 여정'으로 제안하는 방식이죠.

특히 '퍼멘티드 고스트'라는 이름이 유니크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름에 담긴 철학이 브랜드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퍼멘티드(Fermented 발효된)'라는 단어는 흔히 쓰이진 않지만, 와인이나 사케처럼 맥주도 '발효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와인이나 사케는 정제된 주류, 감각적으로 음미해야 하는 술로 인식되잖아요. 그에 반해 맥주는 같은 발효주임에도 불구하고 그 풍요로움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맥주의 미학적인 즐거움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간 안에 설치한 맥주잔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 형태의 조명은 밤이 되면 벽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도록 설계했어요. 덕분에 이곳을 와인 바로 착각하고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시죠. "맥주를 이렇게도 즐길 수 있군요" 같은 반응을 들을 때면 제가 의도했던 놀라움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구나 싶습니다.

맥주잔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빛나는 퍼멘티드 고스트 외관 (사진=김미연 제공)

'고스트'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한국 전래 이야기 속 도깨비만 봐도 평소엔 지팡이나 빗자루 같은 평범한 물건으로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잖아요. 맥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늘 일상에 존재하지만, 어느 날 "앗, 이게 뭐지?" 싶은 의외의 감각이 찾아오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퍼멘티드 고스트 셀러(맥주 보관 공간)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고스트 캐릭터 4마리를 두었어요. 이들은 일상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감각을 뒤흔드는 존재로, 저희가 설계한 반전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손님들이 더 편하고 직관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작은 장치이기도 하고요.

퍼멘티드 고스트 내부, 비어 셀러와 그 위의 네 마리 고스트 (사진=김미연 제공)

한 인터뷰에서 퍼멘티드 고스트의 핵심 가치로 '다양성'을 꼽으셨는데요. 다양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크래프트 맥주를 정의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다양성'이에요. 맥주는 어떤 술보다 풍미가 풍부하고, 맛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습니다. 알코올 도수만 봐도 2~3도에서 15도 이상까지 폭넓게 분포하죠. 만드는 방식이나 역사적 배경, 기원 역시 무척 다양합니다. 그래서 맥주가 본래 지닌 이 다채로움을 브랜드에도 담고 싶었어요.

보통 식당에 가면 맥주 선택지가 한정적이잖아요. '카스' 아니면 '캘리'처럼요. 하지만 맥주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제가 말하는 다양성은 단순히 종류가 많다는 의미를 넘어, 선택권이 주는 해방감과 행복감에 가까워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듯, 맥주에도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퍼멘티드 고스트에서는 맥주를 단순한 '가벼운 한 잔'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이길 바라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 한 모금이 주는 만족과 즐거움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다양성을 브랜드의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