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에서 CSO까지, 변화의 키를 잡다

공대생에서 개발자, IT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 CSO에 이르기까지. 도메인과 직무가 달라져도, 어떻게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본질을 고민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임현근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Scrap1: "3년을 걸고 내리는 이직 결정은 커리어 인생의 10%를 걸고 하는 셈이에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미용 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를 만들고 있는 힐링페이퍼에서 CSO(Chief Strategy Officer)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략, 영업, 마케팅, 운영, 해외 사업까지 비즈니스 전반을 아우르던 역할에서 확장되어 지금은 제품까지 포함해 총 160명 이상을 이끌고 있어요.
2023년 기준으로 힐링페이퍼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다졌고, 이제는 성장 속도를 더욱 높이는 데 집중하는 상황입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에 빠져들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간단한 게임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경시대회에도 참가했었죠. 컴퓨터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대 진학을 꿈꾸게 됐어요. 그러던 중 일본이 공대 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고, 마침 국비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도 알게 되면서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됐죠.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한 뒤 덴츠다이(UEC)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도쿄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경험하셨다고요. 낯선 환경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정말 어려웠던 건 친구들과의 대화였어요. 1:1 대화는 상대방이 제 일본어 수준에 맞춰 이야기해줘서 괜찮았는데, 네 명 이상만 모이면 대화를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열심히 듣고 준비해서 한마디 하려 하면, 어느새 대화 주제가 바뀌어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감각을 익히고자 1:1로 일본인 친구들을 자주 만났어요. 그러다가도 너무 답답한 날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껏 한국어로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요. 그렇게 조금씩 일본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석사를 마친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하셨어요. 어떤 경로로 커리어를 이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박사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일본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기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머신러닝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이나 창업도 고민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자'는 마음이 확고해졌고, 익스피디아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도 있었는데,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고민과 배경이 있었나요?
당시 삼성전기에서는 갤럭시 관련 개발을 했었는데, 모바일 산업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였어요. 저는 성숙된 시장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서 고객의 반응과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IT 산업에 관심이 생겼고, 당시 이커머스와 여행은 IT를 통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분야였어요. 그렇게 성장성과 시장 가능성을 모두 갖춘 산업을 찾던 중 익스피디아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후 힐링페이퍼(강남언니)로의 이직은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나요?
익스피디아로 이직할 때와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트래블테크는 제가 일하던 시기에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특히 익스피디아는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산업과 플레이어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도메인에서 더 밀도 있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겨났어요. '조금 더 작은 조직에서 개발팀과 가까이 호흡하며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다만, 너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은 인프라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30명 이상 100명 이내 규모인 조직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당시 산업적으로 성장 모멘텀이 강한 영역을 찾던 중, IT를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판단한 두 분야, 헬스케어와 파이낸스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건강한 조직 문화와 의미 있는 기여가 가능하다고 느낀 힐링페이퍼에 확신이 들어 최종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보면, 중요한 갈림길마다 흔들림 없이 방향을 잡아오신 것 같아요. 진학이나 취업처럼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두고 결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매 순간 고민을 많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쫄보라서 그렇답니다.(웃음) 리스크 감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건 제가 이직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주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30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간다고 가정하면, 3년을 걸고 내리는 이직 결정은 커리어 인생의 10%를 걸고 하는 셈이에요. 그런데 커리어 초반은 복리처럼 성장하는 시기라 이 10%가 실제로는 50%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그만큼 중요한 이직을 쉽게 결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거죠. 그래서 저는 이직이나 진로에 대해 항상 무게감을 갖고 깊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커리어 패스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라 미래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지 않거나, 여러 길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져 고민될 때는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요. 이 원칙은 제가 일해 온 십여 년 동안 변하지 않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져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될 때는, 그 선택이 앞으로의 기회를 더 넓혀줄 수 있는지 신중히 고민하고 결정하는 거죠. 결국 '이 분야(또는 회사)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직감에 더해, '이후에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예측해보며 선택하는 것이 저만의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Scrap2: "압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want)' 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업뿐 아니라 직무 변화도 인상적이에요. 공대생으로 시작해 지금은 조직의 CSO 역할까지 맡고 계신데요. 이런 커리어 전환은 처음부터 의도하신 방향이었나요?
직무 변화도 결국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기준, '선택지가 넓어지는 방향' 그리고 '재미'를 중심에 두고 결정해온 결과와 같아요.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도, '개발을 왜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졌어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깊이 파고드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는 '이 기술을 활용해서 무언가를 더 잘 되게 만드는 것' 자체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 성향에 가까웠던 거죠.
관심사를 열어두고 개발을 하다 보니 데이터를 함께 다루게 되었고, 그렇게 데이터 분석이라는 직무로 확장할 수 있었어요. 또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비즈니스 관점에서 여러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이 재밌어졌고, 자연스럽게 전략 컨설팅 같은 역할도 경험하게 됐죠. 결국 저의 기본적인 성향과 방향성은 일관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연관 직무로 확장하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산업이나 직무가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잖아요. 그런 전환의 순간마다 어떤 어려움이나 고민이 따라왔는지도 궁금해요.
물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특히 커리어 6~7년 차 즈음에는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주니어 시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저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주니어와 시니어의 경계에 서게 되면서 문득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발자도 아니고, 데이터 분석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기도 애매했어요.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감이 굉장히 컸죠.
그때 '일을 잘한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만의 기준을 세 가지 레이어로 정리하게 됐어요.
1️⃣ 도메인 스킬: 유통, 제조업 등 특정 산업에 대한 깊은 지식과 네트워크
2️⃣ 직무 스킬: 피그마, 글쓰기, 데이터 분석처럼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능력
3️⃣ 메타 스킬: 직무나 도메인에 관계없이 통용되는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 데이터 기반 사고와 같은 메타적인 역량
그리고 세 가지 기준으로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돌아봤어요. 도메인 스킬은 한 분야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 만큼 강점으로 삼기 어렵다고 판단해 과감히 내려놓았고, 대신 직무 스킬 만큼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죠. 개발, 데이터 분석, 전략 등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며 실력을 쌓아갔습니다.
당시 그런 고민의 과정을 거치며, 제가 진짜로 관심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됐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세상에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IT 기업에서 임팩트를 만드는 핵심 도구는 '개발'이라고 생각했고, 개발을 이해하는 사업 담당자가 되어야겠다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메타 스킬을 강화하는 데도 집중했어요. 커뮤니케이션, 빠른 학습, 구조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죠. 새로운 분야나 직무를 배우는 과정이 재미도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깊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성장해온 것 같아요.
도메인 스킬이 강점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새로운 산업을 이해하기 위한 학습은 필수였을 것 같아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익히고 적응해 오셨나요?
새로운 도메인에 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다만, 아무리 새로운 분야로 옮긴다고 해도, 결국 내가 가진 경험이나 자질을 기반으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겠다'는 접근보다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코어'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했죠.
힐링페이퍼로 이직할 당시, 저의 강점은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였어요. 익스피디아에서 플랫폼을 직접 다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힐링페이퍼에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제 역할의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즉,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헬스케어라는 도메인을 새롭게 익혀가자고 생각한거죠. 도메인을 빠르게 배우기 위해 현업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책이나 자료를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현실적인 이해를 높이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균형이 늘 완벽하진 않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준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시나요?
압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want)' 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내 커리어를 설계하는 방향도 달라지고, 어떤 회사를 찾아야 하는지도 달라지거든요. 결국 결정의 중심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의 니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조율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Scrap3: "'기대감 매니지먼트'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 '밥면빵'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한때 업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프로젝트였죠.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배경이 궁금합니다.
좋은 사람과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친구와 매주 한두 시간씩 만나 '우리끼리 뭘 하면 재밌을까?'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중 빠지지 않는 주제가 음식이었어요. 당시 미국엔 옐프(Yelp), 일본엔 타베로그(Tabelog)처럼 유명한 플랫폼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국은 유사 서비스가 있긴 해도 뭔가 수익을 내는 것이 어려워 보였거든요. 왜 유독 한국에선 맛집 서비스가 돈을 벌기 어려운지 한 번 검증해보면 재밌겠다 생각했죠. 그러던 중 맛집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관련된 일을 해오던 분을 알게 되었고, 콘텐츠적으로도 시너지가 나겠다 싶어서 함께 본격적으로 밥면빵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마침 애자일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라, 저희도 '일주일 안에 MVP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각자 본업을 병행하다 보니 실제로 MVP 완성까지는 한 달 정도 걸렸지만, 그게 저희의 첫 시작이었어요.
당시 리텐션이 70%까지 올랐다고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대부분의 멤버들이 1년 사이 이직했고, 새롭게 옮긴 회사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어요. 그러다 보니 이 일을 전업으로 삼을지, 사이드 프로젝트로 이어갈지, 혹은 여기서 멈출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당시 새로운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한편으론 사이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졸업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콘텐츠는 많지만, 대부분 시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정작 '멈춤'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혹시 사이드 프로젝트를 멈춰야 할 시점을 어떻게 감지하시는지, 나름의 신호나 기준이 있을까요?
'기대감 매니지먼트'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가 힘들어지는 순간은 대부분 서로의 욕심이나 기대가 어긋날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기대치를 맞추는 일부터 하려고 노력해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관계가 좋을 때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것이에요. 갈등이 생기기 전에 "힘들어지면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만약 이 아이템으로 창업하게 된다면, 더 큰 리스크를 지는 사람이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가자", "누가 대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표가 이 정도 지분을 가져가자" 등 다양한 관점에서 미리 기대치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율해두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그런 상황이 오면, "요즘 괜찮아?"라고 먼저 묻거나 "나 요즘은 좀 이런 상태인 것 같아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나눠요. 사전에 나눈 기대치와 기준이 있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거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각자가 '왜 이걸 하는지(Why)' 서로 공유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같은 이유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의 목적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창업을 염두에 두고, 또 누군가는 단순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킥오프할 때, 그리고 주기적으로 회고할 때마다 가장 먼저 '각자의 Why'를 나눴어요. 처음에 가졌던 목적이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번외로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밥면빵을 시작하면서 버킷리스트에 적어놨던 목표 중 하나가 아웃스탠딩 인터뷰와 테헤란로커피클럽 발표였어요. 커피클럽 발표는 아쉽게 하지 못했지만, 인터뷰는 실제로 진행할 수 있어서 참 뿌듯하고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밥면빵 외에도 몇 년간 트레바리를 진행하고, 생성 AI 관련 책을 공동 집필하고, 컨퍼런스까지 운영하시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식과 노하우를 나누는 일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분들과 함께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에서 큰 에너지를 얻어요. 똑똑하고 열정 있는 분들과 모여 무언가를 배우는 경험은 앞서 언급한 '메타스킬'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혼자였다면 미뤘을 일들도 세미나나 발표처럼 산출물이 정해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니까요. 그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정리하게 되고, 생각도 훨씬 명확해지는 걸 느낍니다.
Scrap4: "어제 못하던 무언가를 오늘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빈틈 없는 나날에 때로는 번아웃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시기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저에게는 명상이 큰 도움이 돼요. 루틴화하는 건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순간마다 명상을 통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거든요.
몇 년 전 번아웃을 겪었을 때, 제가 집중한 키워드는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였는데요. 스트레스의 원인을 돌아보면, 주로 인간관계나 일처럼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롯이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에게로 귀결되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치고 있기도 합니다.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요?
사실 저는 거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요.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나, 잠자기 전 이불 속에 누웠을 때처럼 소소한 순간들도 기분이 좋고요. 지금 인터뷰처럼 좋은 분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도 참 즐겁죠. 제 성향이 원래 긍정적인 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제가 즐겁고 재밌게 살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인지 일상 속 대부분의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그런 성장을 실감했던 특별한 모먼트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어제 못하던 무언가를 오늘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사소한 것이라도요. 예를 들어, 어제까지는 브라우니가 뭔지도 몰랐는데 오늘은 알게 됐다면, 엑셀에서 잘 다루지 못했던 함수를 이제는 쓸 수 있게 됐다면, 그런 작은 변화도 분명한 성장이라고 느껴요. 이렇게 보면 대부분의 순간에 성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못했던 걸 해냈거나, 새로운 걸 시도했거나, 몰랐던 걸 알게 된 모든 순간들이 다 성장의 모먼트인 거죠.

성장을 바라는 주니어 팀원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주로 해주시나요? 실제로 함께 일하면서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조언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건 팀원들과의 '신뢰 관계'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어떤 말을 해도 진심으로 전달되고, 상대가 받아들이기도 훨씬 수월하거든요. 신뢰가 형성된 관계 속에서라면 저는 보통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하는 편이에요.
첫째, 주니어 시기에는 '커넥팅 더 닷'(Connecting the Dots)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아직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떤 역량이 조직 안팎에서 중요해질지 잘 모르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더라고요. 이때 제 경험을 함께 들려주기도 합니다.
둘째, 다양한 경험을 하되, 그 중에서도 1~2가지 분야에서는 반드시 깊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데요. 주니어 시절에 파놓은 깊이가 시니어가 되었을 때 실력의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고 싶은게 많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친구들에게도 "넓게 경험하되 핵심 영역 한 두개 정도는 깊이 있게 파보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급해하지 말라고요. 많은 분들이 빠르고 쉽게 성장하길 원하지만, 조급함이 크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급한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도록 속도를 챙기라는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리더는 결국 두 가지를 해낼 수 있는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금 조직이 가진 미션을 잘 수행해 성과를 내는 리더이고요. 둘째는 팀 빌딩을 잘하는 리더, 즉 미래를 위한 성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봐요. 종합해보면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의 핵심 역할인 것 같아요.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팀 빌딩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보는데요. 팀 전체는 물론, 팀원 개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회사의 니즈뿐만 아니라, 각 팀원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를 고려해 가능한 미션과 역할을 연결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 팀원이 6개월 전과 비교해 어떤 업무가 달라졌는지, 지금 맡은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 고민은 없는지 등 유심히 살피고 자주 대화하려고 하죠.
실제 조직을 맡게된 뒤, 꼭 실천하려 한 일이 '3개월 안에 모든 팀원과 1:1 미팅을 진행하는 것'이었어요.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1:1 미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서로 신뢰도 쌓이고, 팀원들의 변화도 더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봤을 때 특정 장면을 스크랩한다면, 어떤 장면을 남기고 싶나요?
소중한 순간이 너무 많은데 꼭 하나만 골라야 하는 거죠?(웃음)
개인적으로 결혼과, 20살에 처음 일본에 가기 위해 새벽 공항버스를 탔던 순간이 떠올라요. 요즘은 해외에 오래 머물러도 카카오톡이나 SNS 덕분에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그때만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인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기억이 납니다.
커리어적으로는 대기업을 나와 익스피디아에 입사하던 장면을 스크랩하고 싶어요. 당시 온보딩을 위해 영국에 갔었는데요. 그곳에서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온 여러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들에게도 한국은 낯선 나라였죠.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제게 정말 새롭고 인상 깊었어요.
익스피디아는 특히 '다양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월간 전사 미팅에서는 매출이나 영업이익 같은 수치뿐만 아니라, 젠더 밸런스 같은 다양성 지표들도 함께 다뤘어요. 그런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시야도 한층 넓어졌던 것 같아요.
각 스크랩 장면에 제목과 음악을 붙인다면, 첫번째는 <프롤로그: 챕터원 시작>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모험의 서막같은 음악을 넣고 싶어요. 두번째는 <다양성>으로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함께 잼을 나누는 듯한 재즈 음악을 플레이하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