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에서 CSO까지, 변화의 키를 잡다

공대생에서 CSO까지, 변화의 키를 잡다

공대생에서 개발자, IT 컨설턴트를 거쳐 현재 CSO에 이르기까지. 도메인과 직무가 달라져도, 어떻게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본질을 고민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임현근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임현근 님은 도쿄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삼성전기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익스피디아에서 IT 컨설턴트로 일하며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시장을 경험했고, 이어 힐링페이퍼에서는 일본 시장을 시작으로 비즈니스 전반을 리딩했습니다. 현재는 제품까지 총괄하는 CSO(Chief Strategy Officer)로서 회사와 서비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Scrap1: "3년을 걸고 내리는 이직 결정은 커리어 인생의 10%를 걸고 하는 셈이에요."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미용 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를 만들고 있는 힐링페이퍼에서 CSO(Chief Strategy Officer)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략, 영업, 마케팅, 운영, 해외 사업까지 비즈니스 전반을 아우르던 역할에서 확장되어 지금은 제품까지 포함해 총 160명 이상을 이끌고 있어요.

2023년 기준으로 힐링페이퍼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다졌고, 이제는 성장 속도를 더욱 높이는 데 집중하는 상황입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에 빠져들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간단한 게임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경시대회에도 참가했었죠. 컴퓨터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대 진학을 꿈꾸게 됐어요. 그러던 중 일본이 공대 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고, 마침 국비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도 알게 되면서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됐죠.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한 뒤 덴츠다이(UEC)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도쿄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경험하셨다고요. 낯선 환경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정말 어려웠던 건 친구들과의 대화였어요. 1:1 대화는 상대방이 제 일본어 수준에 맞춰 이야기해줘서 괜찮았는데, 네 명 이상만 모이면 대화를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열심히 듣고 준비해서 한마디 하려 하면, 어느새 대화 주제가 바뀌어 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감각을 익히고자 1:1로 일본인 친구들을 자주 만났어요. 그러다가도 너무 답답한 날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껏 한국어로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요. 그렇게 조금씩 일본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 유학 시절 (사진=임현근 제공)

일본에서 석사를 마친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하셨어요. 어떤 경로로 커리어를 이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박사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일본 기업에서 일할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기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머신러닝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이나 창업도 고민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자'는 마음이 확고해졌고, 익스피디아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도 있었는데,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고민과 배경이 있었나요?

당시 삼성전기에서는 갤럭시 관련 개발을 했었는데, 모바일 산업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였어요. 저는 성숙된 시장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서 고객의 반응과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IT 산업에 관심이 생겼고, 당시 이커머스와 여행은 IT를 통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분야였어요. 그렇게 성장성과 시장 가능성을 모두 갖춘 산업을 찾던 중 익스피디아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익스피디아 재직 당시 (사진=임현근 제공)

이후 힐링페이퍼(강남언니)로의 이직은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나요?

익스피디아로 이직할 때와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트래블테크는 제가 일하던 시기에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특히 익스피디아는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산업과 플레이어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도메인에서 더 밀도 있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겨났어요. '조금 더 작은 조직에서 개발팀과 가까이 호흡하며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다만, 너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은 인프라가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30명 이상 100명 이내 규모인 조직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당시 산업적으로 성장 모멘텀이 강한 영역을 찾던 중, IT를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판단한 두 분야, 헬스케어와 파이낸스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건강한 조직 문화와 의미 있는 기여가 가능하다고 느낀 힐링페이퍼에 확신이 들어 최종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보면, 중요한 갈림길마다 흔들림 없이 방향을 잡아오신 것 같아요. 진학이나 취업처럼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기준이나 원칙을 두고 결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매 순간 고민을 많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쫄보라서 그렇답니다.(웃음) 리스크 감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건 제가 이직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주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30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간다고 가정하면, 3년을 걸고 내리는 이직 결정은 커리어 인생의 10%를 걸고 하는 셈이에요. 그런데 커리어 초반은 복리처럼 성장하는 시기라 이 10%가 실제로는 50%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그만큼 중요한 이직을 쉽게 결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거죠. 그래서 저는 이직이나 진로에 대해 항상 무게감을 갖고 깊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커리어 패스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라 미래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하지 않거나, 여러 길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져 고민될 때는 '내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요. 이 원칙은 제가 일해 온 십여 년 동안 변하지 않는 원칙이기도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져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될 때는, 그 선택이 앞으로의 기회를 더 넓혀줄 수 있는지 신중히 고민하고 결정하는 거죠. 결국 '이 분야(또는 회사)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직감에 더해, '이후에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예측해보며 선택하는 것이 저만의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